1박2일, 아이들은 풍선처럼 부푼 가슴으로 별새꽃돌과학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겐 프로그램 보다 자기들끼리 재잘거리고 떠들어대는 게 더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다. 재잘거림은 장난스런 욕에서 점점 거친 욕으로 변하며 유쾌하지 못한 말싸움으로 비화하곤 한다. 아이들의 소란과 욕설을 통제하는 게 교사들의 일이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통제해야할지 막막함을 느낄 때가 많다. 그날도 내 뒷자리에 앉았던 중2 남학생과 초5 여자애 간에 심한 다툼이 생겼다. 여자아이는 오빠가 자기 엄마 욕을 했다며 씩씩거렸다. 내가 듣기에도 상스런 욕은 아니었지만 엄마를 비하하는 욕이었고, 여자아이가 속상해할 만하다고 생각되었다. 초5 ㅇㅇ이는 중2 ㄷㅎ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그러나 ㄷㅎ이는 사과는 커녕 계속 놀려대며 약을 올렸다. 나는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ㄷㅎ에게 사과를 종용했다. 그러나 ㄷㅎ이는 ㅇㅇ이도 욕을 했다며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ㄱㄷㅎ! 너네들끼리 욕하는 것은 하도 습관이 돼서 이해할 수 있지만, 부모 욕하는 것은 절대 아니야. 그러니 사과해.” 나는 ㄷㅎ이가 그 정도면 이해하고 사과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ㄷㅎ이는 여름방학 때 캠프에 가면서 처음 만났었는데, 그 때 돌발행동을 하며 말썽을 일으켰으나 내가 자기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주니 결국엔 나의 말을 듣고 아주 친해진 아이다. 하지만 이번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동안 자주 못봐서 소원해진 건가? 다시 얘기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ㅇㅇ이도 물러서지 않고 끈질기게 사과를 요구했다. “ㄷㅎ아, 다른 사람 부모를 욕하는 건 잘못하면 부모들 싸움으로 커지는 거야. ㅇㅇ이가 자기 엄마에게 얘기하면 ㅇㅇ이 부모님이 너네 아빠에게 전화해서 서로 싸우게 돼. 그렇게 되는 게 좋겠어? 나도 나를 욕하는 건 몰라도 우리 부모님 욕하면 못 참아. 다른 사람이 너네 부모 욕하면 너는 괜찮겠어?” “네, 괜찮은데요.” 라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너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상대방은 사과하라잖아?” “왜요?” 계속 엉뚱한 고집을 부렸다. “너 이러면 뭐가 좋아? 무슨 이익이 있어?” “이익이 있어요.” “이익이 있다고?” “아빠에게 복수하는 거니까 스트레스가 풀려요.” 참으로 황당한 대답이었다. 여름 캠프에도 아빠가 강제로 보내서 돌발 행동을 했던 것이 생각나서 되물었다. “왜? 아빠가 강제로 보냈어?” 그랬다고 했다. 집에 있으면 신나게 게임할 텐데 못하게 되었다며 골이 나 있었다. 그랬구나. 여름 캠프 때도 억지로 보내서 문제를 일으키더니 이번에도 왜 그랬을까? “그래. 억지로 보내서 화난 것은 이해해. 하지만, 그건 너와 아빠의 문제지, 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줘야 돼?” 여전히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더 이상 얘기해봐야 더 짜증나게만 하고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대화를 중단하려고 최종 경고를 했다. “오늘 중에 사과해라, 안 그러면 아빠한테 전화한다.” ㄷㅎ이는 아빠 얘기에도 겁을 먹지 않고 전화하라고 했다. 아빠에게 엄청 뿔이 나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별 효과없는 협박을 했다는 생각에 한발 뒤로 물러났다. “나도 아빠한테 얘기하고싶진 않아. 이런 얘기 하면 아빠는 얼마나 속상하겠냐? 나도 즐겁지 않고. 그러니 선생님 마음 좀 편하게 도와주라.”며 읍소를 했지만 ㄷㅎ이의 반응은 냉랭했다. 나는 다시 오늘 중 사과하지 않으면 할 수 없이 아빠한테 전화할 거라고 다짐하듯 말했다. 그러나 별새꽃돌과학관에 가서도 그 날은 아무런 결과가 없었다. 나는 엄중하게 말했다. 내일 아침에 아빠에게 분명하게 전화할거라고. 다음날 아침, ㄷㅎ이는 여전히 그 문제와 상관없이 다른 애들하고 게임에만 빠져있었다. ㄷㅎ에게 최종적으로 압박을 했다. “네가 사과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라. 선생님이 지금 아빠에게 전화하는 것과 네가 사과할 때까지 선생님이 스마트폰을 압수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좋으냐?” 그러자 ㄷㅎ이는 “스마트폰 압수해도 소용없을 걸요. 스마트폰이 두 개거든요.” 하며 두 개를 보여줬다. “그러면 두 개 다 압수해야지.” 옆에서 그걸 듣고있던 다른 애들이 “어이구 저런, 왜 두 개라고 알려줘?”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러자 ㄷㅎ이는 두 개나 뺏기는 것은 싫었던지 아빠한테 전화하라고 했다. 나에겐 내키지 않는 쪽이었으나 교사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아빠한테 전화를 했다. 아빠에게 우선 내가 ㄷㅎ이를 좋아한다, 정이 많은 아이라며 칭찬을 해주었다. 그러면서 어제 일어난 욕설 사건을 설명하며 애들끼리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나 상대방이 워낙 강하게 사과를 요구하고 그냥 물러날 아이가 아니라서 사과를 하도록 좀 잘 얘기해달라고 했다. 아빠가 잘 알았다며 ㄷㅎ이를 바꿔달라고 해서 ㄷㅎ이랑 통화를 잘 했다. 감정을 발하지 않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과를 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ㄷㅎ이도 알았다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기회를 놓치면 안 되었다. 나는 얼른 가서 사과하고 기분좋게 집에 가자고 했다. 그러나 아빠와 통화할 때와는 다르게 다시 뻐팅겼다. 안되겠다 싶어 내가 ㅇㅇ이 데려올테니까 기회를 놓치지 말고 사과해라, 기회를 놓치면 후회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고는 ㅇㅇ이를 ㄷㅎ이에게 데려왔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선생님이 도와주는대도 ㄷㅎ이는 사과를 못한다고 했다. ㅇㅇ이는 바로 돌아서서 가버렸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반납하라고 했더니 스마트폰 두 개를 순순히 내 손에 내놓았다. 그러면서 억울하다는 듯 ㅇㅇ이가 먼저 자기 부모 욕을 했다고 말했다. 참 알 수 없는 놈이었다. “그게 뭔소리야? 어제 사과하라고 할 때는 그런 얘기 없었잖아. 억울하면 그 때 얘기해야지, 왜 이제 얘기해?” 하니 자기도 할 말이 없어서인지 그에 대해선 대꾸하지 않았다. 캠프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다. 나는 ㄷㅎ이의 스마트폰을 내 서랍에 넣어두고 생각했다. 내일이라도 스마트폰을 찾아가면 좋으련만~. 그런데 이게 내가 잘한 것인가? 이렇게 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아빠하고 통화했으니 아빠한테 맡기고 그걸로 끝내야 했던 거 아닌가? 내가 괜히 책임을 떠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ㄷㅎ이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무래도 내가 오버한 것 같다고, 아빠에게 전화를 드렸으니 아빠에게 맡겼어야 하는데 내가 스마트폰을 압수해서 월권을 한 것 같다고. 그러나 ㄷㅎ이 아빠는 그렇게 좀 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잘 하셨다며 오히려 나의 태도를 옹호해주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큰 실수를 한 것이 분명했다. 평소에 나는 교육의 주체가 부모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어떻게 부모들에게 인식시켜줄까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번 나의 행동은 교육의 주체가 부모가 아니라 교사라는 왜곡된 현실 인식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셈이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일단은 문제를 빨리 수습하는 것이 나의 과제였다. 그런데 답이 잘 보이지 않았다.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지혜와 그분의 개입을 구했다. 그 다음날, ㄷㅎ이가 센터에 와서는 인사도 하지 않고 스마트폰부터 달라고 했다. 참 어이가 없었다. “ㅇㅇ이에게 사과했어?” 아니라고 했다. “사과하기 전까지 내가 보관한다고 했잖아.” ㄷㅎ이는 그 말을 새겨듣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사과해야 준다고 했다. ㄷㅎ이는 내가 했던 말을 반사했다. 선생님이 스마트폰 가지고 있으면 무슨 이익이 있냐고. “나는 아무 이익이 없어. 나도 빨리 돌려주고 싶어.” 라고 했다. 얘기를 하던 중 스마트폰으로 숙제를 해야 한다고 했다. 무슨 숙제냐니까 자기가 무슨 게임회사에 앱개발자로 참여해서 오늘 중에 응답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궁금해서 질문을 몇 번 했고, 흥미로운 대답이 돌아왔다. 그 회사에서 그러면 용돈을 주냐니까 그 용돈을 천 만원 이상 저축해놓았다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안 줘도 새로 사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아빠 보다 돈을 더 많이 벌게 될 것이고, 앞으로는 아빠가 일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도록 해드릴 거라고도 했다. 나는 그런 재능과 아빠를 위하는 마음을 칭찬해주면서, 그러니까 빨리 사과를 하면 준다고 했다. 그런데 ㄷㅎ이가 다시 억울하다는 식으로 말했다. “ㅇㅇ이가 먼저 우리 부모 욕을 하니까 저도 ㅇㅇ이 부모 욕을 했어요.” 나는 ㅇㅇ이가 부모 욕하는 건 못들었는데 뭐라고 했냐니까 손가락 욕을 했다고 한다. 그건 일반적으로 서로 하는 욕 아니냐니까 자기들끼리 하는 욕은 손가락을 위로 올리고 하지만, 부모 욕은 손가락을 밑으로 향하게 한다며 흉내까지 내보였다. “그래? 하지만 니가 잘 못 본 거 아냐?” 분명히 그렇게 했다고 했다. 그러나 난 ㄷㅎ이 말이 핑계라고만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ㄷㅎ이의 눈에 이슬이 약간 어리었다. 억울하다는 생각과 나에 대한 원망의 마음, 여러 복합적인 감정들의 표현이었으리라. 그저께의 당당하던 모습, 어저께의 쿨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연약한 모습이었다. 그것이 긍정적인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눈물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분명 희망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상당한 시간 동안 나와의 대치 상태가 계속 되었다. ㄷㅎ이는 눈가에 이슬이 더 어린 채로 재차 자기의 억울함을 토로하였다. 그러는 동안 ㅇㅇ이가 왔다. 나는 ㅇㅇ이를 붙잡고 물었다. “니가 먼저 ㄷㅎ이 부모 욕을 했어?” ㅇㅇ이는 그런 적 없다고 했다. 그래서 ㄷㅎ이와 한 자리에서 확인을 했다. ㄷㅎ이에게 “ㅇㅇ이는 너에게 부모 욕을 한 적이 없다고 하는데~” 그러자 ㄷㅎ이가 또 손가락 욕 모양을 하며 이렇게 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ㅇㅇ이는 역시 자기도 손가락 욕을 했지만 부모 욕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다시 ㄷㅎ이에게 “네가 잘못 보고 오해한 거 아냐?”고 했다. 그런데 ㅇㅇ이가 돌연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왜 이 오빠만 뭐라고 하세요? 나도 잘못했을 수 있잖아요?” 이 말이 이상하게 생각될 수 있으나 ㅇㅇ이는 똑똑한 아이였다.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었다. 나는 얼른 그 말을 받아, “그래, 너는 부모 욕을 하는 뜻으로 안했어도 오빠가 오해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니가 오해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좋겠다.” 그러자 ㅇㅇ이는 쿨하게 “오빠에게 오해하게 해서 미안해.”라고 사과했다. 그 말을 듣고 ㄷㅎ이도 진지하게 화답을 했다. “ㅇㅇ아, 내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서 네 부모님 욕을 해서 정말 미안해.” ㄷㅎ이의 눈빛이 더욱 촉촉이 젖어들면서 아름답게 빛났다. 그 광경을 보던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야, 눈물날라고 한다. 너희들 정말 멋있다.” ㅇㅇ이가 남자아이였다면 정말 꼬옥 안아주고싶은 순간이었다. ㄷㅎ이를 안아주고 등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역시 ㄷㅎ이 너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정말 잘했어.” ㄷㅎ이는 나에게서 얼른 몸을 빼냈다. 나는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다시 말했다. “너희들은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ㅇㅇ이는 스스로를 뿌듯하게 여기는 듯 했고, ㄷㅎ이도 아주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나는 뭉클한 가슴을 안고 얼른 내 서랍에 가서 스마트폰 두 개를 꺼내다가 ㄷㅎ이 손에 되돌려주었다. 이 기쁜 소식을 ㄷㅎ이 아빠에게 전했다. ㄷㅎ이가 사과했다고, 정말 멋있다고 칭찬하고 안아주었다며 아빠도 ㄷㅎ이 꼭 좀 안아주라고. 상황이 끝나고서 사건을 복기해보았다. ㄷㅎ이가 처음 억울함을 토로할 때 그냥 지나쳐버린 건 나의 실수였다. 말도 안 되는 변명이라고 생각될지라도 좀더 살펴보았어야 했을 것이었다. 상대방의 억울함을 해결해주려다가 오히려 이 쪽을 억울하게 한다면 이는 대단한 넌센스다. ㄷㅎ의 입장에서 더 생각해보고 감정을 더 잘 헤아릴 수 있었다면 문제는 훨씬 빨리 종료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ㄷㅎ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이 귀가한 후 ㄷㅎ이에게 전화를 했다. ㄷㅎ이의 억울함을 제대로 몰라줘서 미안하다고. ㄷㅎ이는 또 무슨 게임에 빠져있는지 별 감정이 없는 말투로 간단하게 “알겠습니다.”라면서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래도 내가 진 빚을 갚았으니 그걸로 족했다. |